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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독서 생활/my attic ( Nate Tong 예전글 모음)

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by mmmJanuary 2009. 4. 29.

옮깁니다 tong.nate.com/sungmia 에  올렸던 글을 편집수정하여 올립니다.

 

2006.12.04 06:27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읽고 있다.

 

먼 북소리에서는

소설가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그가 마흔살이 되기 전에

장편 소설책을 써야하지 싶어

일본에서 벗어나

그리스의 섬으로 아내와 함께 여행하며-

비수기의 여행지에서-

글을 썼단다. 3년 간 그렇게 여행하며

글에 몰두할 수 있었다한다.

소설을 쓰다 쉬고 싶으면 책을 번역하고

책을 번역하다 쉬고 싶으면

소설을 쓰고..

 

 

 

다음은 [먼 북소리] 中 에서.

번역: 김남주

출판: 중앙 M&B

 

 

 

.....( 그가 이 여행 중 쓴 장편 소설책은 [노르웨이의 숲], [댄스,댄스,댄스] 이다.

단편소설 또한 썻고: [TV 피플] )

 

 

 

오전 세시 오십분의 일시적인 죽음

 

 

 " 긴 소설을 쓰는 작업은, 내게 있어서는 아주 특수한 행위라 해도 좋을 것이다.

어떤 의미로든 그것을 일상적인 행위라고는 할 수 없다.

그 작업은, 홀로,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는 행위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지도도 없이, 나침반도 없이, 먹을 거리도 없이, 수목은 벽처럼 빼곡하게 들어서 있고,

겹겹이 거대한 가지가 하늘을 가린다.

그 숲 속에 어떤 동물이 생식하고 있는지도 나는 모른다.

따라서, 긴 소설을 쓸 때면 , 나는 머리 한켠으로 늘 죽음을 생각한다.

 

보통 때는 그런 일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을 절박한 가능성으로 일상 속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삼십대 후반의 건강한 남성 대부분이 그러하듯- 극히 드문 일이다.

그러나 일단 장편 소설에 착수하면 ,

 내 머리 속에는 어쩔 수 없이 죽음이 자리를 트는 것이다. 나는 그 근질근질하고

꺼끌꺼끌한 갈고리의 감촉을 늘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감촉은 소설의 마지막 한 줄을 다 쓸 때까지 절대로 내게서

떨어져나가 주지 않는다.

 

늘 그렇다. 언제나 똑 같다. 소설을 쓰면서,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죽고 싶지 않다,

죽고 싶지 않다,라고 줄곧 생각한다.

 

적어도 이 소설을 무사히 완성시킬 때까지는 죽고 싶지 않다.

이 소설을 끝까지 완성시키지 못한 채 내동댕이치고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나는 눈물이 나올 정도로 분했다.

 

어쩌면 이 소설은 문학사에 남을 만큼 훌륭한 작품이 아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은 나 자신인 것이다.

좀더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이 소설을 완성시키지 못한다면 , 나의 인생은

엄밀하게는 나의 인생이 아닌 것이다- 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많든 적든 그렇게 생각하며, 그런 생각은 내가 나이를 먹고 소설가로서의

커리어를 쌓아감에 따라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생략---

 

아침에 눈을 뜨면 먼저 부엌에 가서 주전자에 물을 넣어, 전기 히터의 스위치를 켠다.

그리고 물이 끓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기도한다.

 

"부탁입니다. 나를 좀더 오래 살게 해주세요. 나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라고,

하지만- 그렇다- 대체 나는 누구를 향하여 기도를 하면 좋은가?

신을 향하여 기도하기에는 , 나는 지금까지의 인생을 너무도 내 마음대로 보내왔다.

운명을 향해 기도하기에는 , 나는 너무도 자신을 믿어왔다.

뭐 아무러면 어때. 누구를 향하여 기도를 하든 줄곧 기도를 하고 있으면 그러는 사이,

그 어느 누군가에게 제대로 전해질지 모른다.

 

---생략---

 

피아차 크바르에 면한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주위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나는 문득 이상한 기분에 빠진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지금 이곳을 걷고 있는 사람들은,

백년이 지나면 이미 그 누구 하나 살아 있지 않을 것이다,라고.

창문 앞으로 걸어 지나가는 젊은이도

버스에 올라타려는 국민학생도, 극장의 간판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사나이도,

그리고 나도,

필경 백년 후에는 그저 흙먼지에 불과할 것이다.

백년 후에도 지금처럼 햇살이 이 거리를 비추고,

지금처럼 바람이 이 도로를 질러갈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 있는 그 누구도,

이미 이 지표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아니, 백년 후에 내가 이 지표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그건 별 상관없다, 나는 생각한다.

만약 백년 후에 내 소설이 죽은 지렁이처럼 바싹 말라 먼지처럼

사라진다 해도 , 그건 그것대로 별수없는 일이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별 문제가 아닌 것이다.

내가 원하고 있는 것은 , 영원한 생이 아니며, 불멸의 걸작도 아니다.

내가 원하고 있는 것은 이 현재의 일이다.

이 소설을 다 쓸 때까지만은 어떻게든 살아 있게 해달라는,

단지 그것뿐인 것이다.

 

1987년 3월 18일 수요일,

시간은 새벽 3시 50분.

 

물론 밖은 아직 어둡다.날이 밝으려면 아직 한시간하고도 조금 여유가 있다.

영어로 하면 '스몰 아워즈', 스콧 피츠제럴드가 '혼의 어둠' 이라고

부른 시간이다. 그러고 보니 스콧 피츠제럴드도 소설에 손을 댄 채

그대로 죽었지. 하지만 그는 그래도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발작을 일으켜 쓰러진 채 눈 깜짝할 사이에 숨을 거두었으니 말이다.

필경 쓰기 시작한 소설 따위 생각할 틈도 없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

쓰러지는 그 순간에 채 완성하지 못한 [라스트 타이쿤]이 그의 뇌리를

섬광처럼 가로질렀을지도 모른다. 인간이란 그렇게 쉽사리 순간적으로

죽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닐 테니 말이다.

그런 경우에는 정말 분할것이다, 라고 나는 상상한다.

그의 머리 속에서 그 소설은 이미 완성돼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 소설을 눈으로 볼 수 있는 형태로 바꾸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러기도 전에 그가 죽어버린다면,

모든 것은 사라지고 만다. 소멸하여 무로 화하고 만다.

그리고 아무도 그것을 복원할 수는 없다.

 

---생략---

 

로마는 무수한 죽음을 빨아들인 도시이다. 로마는 모든 시대의,

모든 스타일의 죽음이 녹아 있다.

카이사르의 죽음에서, 검투사의 죽음까지.

영웅의 죽음에서, 순교자의 죽음까지.

로마사의 죽음에 대한 묘사로 넘친다.

원로원 의원은 명예로운 죽음을 선고받으면, 일단 먼저 자택에서

호화로운 주연을 열었다.

그러고는 친구들과 함께 배불리 먹고, 술을 마신 후에, 태연하게

혈관을 갈라. 철학을 논하며 유유하게 죽어갔다.

가난하고 이름도 없는 민중은 테베레 강에 던져졌다.

칼라굴라는 철학자란 철학자는 남김없이 처형하였고,

네로는 기독교인을 사자밥으로 하였다.

 

아침이 찾아오기 전 짧은 시간에, 나는 그런 죽음 덩어리를 느낀다.

죽음 덩어리가 먼 해명처럼 , 나의 전신을 부들부들 떨리게 한다.

긴 소설을 쓰다 보면, 종종 그런 일이 일어난다.

나는 소설을 씀으로 하여, 조금씩 생의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

조그만 사다리를 타고, 나는 한 발 한 발 아래도 내려간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생의 중심으로 가까이 내려가면 갈수록,

나는 명료하게 느끼게 된다. 그 바로 앞 어둠속에서, 죽음 또한 동시에

격렬하게 고조되어 가고 있음을."



작가의 하루는 어떨까?

 

회사...

스토어, 공장, 관공서,백화점, 식당, 은행, 학교 등등이 아닌 바로 자기가 잠자고 밥먹고 씻고하는 거주지에서

근무시간이 확실하게 주어지지 않은 일인데도

 

스스로 작업 시간을 정한 후 주변 사람들의 일이나 생활속에서 흔히-너무나 자주 -생기는

무언가 자신을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게끔하는, 그리하여 작업을 결국 방해하는 여러가지 일들에 휘말리지 않고

소설, 그림이라든지를 작업해야만 하는-예술가의 하루는 어떨까?

 

(하루키작가는 또한 작품과정에만 그치지 않고 확실한 결과물을 내놓은 생산력을 증명한 작가이기에 더욱)

 

호기심..

물론, 그냥 호기심에 그치지는 않는다. 나 또한 그런 예술가의 길을 가기로 선택하여

매일 매일을...이 self-motivation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는) 과 concentration (자신이 세운 목표나 자신이 정해놓은 작업에 대한 집중) 

이란 문제를 (글쎄 그게 문제라기보다는 매일 접해야 하는 뭐라 불러야 하나? 그냥 일상적인 일이지만서도...) 접하기에..

 

'그냥 저냥의 호기심'..이 아닌 'focus'를 하며 나는 [먼 북소리]에 쓰여진 하루키 작가의

작가로서의 일상이 엿보이는 대목을 꼼꼼히 여러번 읽어본다.

 

 

pp 94

스페체스 섬에서의 소설가의 하루

 

 

"시즌이 지난 그리스의 섬에서 소설가는 어떤 생활을 하는지, 하루분을 간추려 써보기로 한다.

아침 일곱시경에 일어난다. 그 시간이 되면 사방이 환하므로 자연히 눈이 떠진다.

그 시간에 일어나는 것을 늦잠이라 한다 해도일곱시 반경에는 근처에 있는 교회에서 종을 광광 울려대무로,

싫어도 눈을 뜰 수밖에 없다.

 

아내는 아침잠이 많아, 아침밥은 늘 내가 짓는다.

아침 식사 자리에서 아내는 언제나 꿈 얘기이다. 누구누구가 나와 이랬다는 등 저랬다는 둥,

그런 얘기이다. 가끔은 나도 등장하여 얼빠진 짓을 하거나,옥상에서 떨어지든가 한다.

하지만 그래봐야 결국은 남의 꿈 얘기이다. 내가 알 바가 아니다.

"우아....흐믐...정말 그랬어?" 하고 건성 대꾸를 하는 사이에 그럭저럭 식사가 끝난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달린다.

짧으면 사십, 길면 백분 정도, 돌아와 샤워를 하고, 일을 시작한다.

이번 여행중에 완성할 예정에 있는 작품은 번역 두편과, 여행 스케치 (지금 쓰고 있는 것 같은 글),

그리고 새 장편소설, 그러니까 결코 한가하지 않다.

소설 원고를 쓰다가 싫증이 나면 번역을 한다.

번역 작업에 싫증이 나면 다시 소설 원고를 쓴다.

비오는 날의 노천 목욕탕과 마찬가지다.너무 뜨거워지면 온탕에서 나오고, 서늘해지면 다시 들어간다. 그런 반복이 줄기차게 계속된다.

 

열한시경까지 일을 하고 나서,

그 다음에는 산책을 겸하여 둘이서 마을로 시장을 보러 간다.

마을 중심까지는 해안을 따라 어슬렁 어슬렁 걸어 십오분 정도 거리이다.

길 왼편에는 바다이고, 오른편에는 19세기에 세워진 오래된 집들이 죽 늘어서 있다.

바람만 세지 않으면, 산책하기에는 꽤 상쾌한 길이다.

하늘에서는 갈매기가 우아하게 날고, 잔잔한 파도가 해안에 떠 있는 보트를 살랑살랑 흔들고,

고양이가 제방에 앉아 햇볕을 쪼이고 있다.....

 

...생략....

 

날씨가 따뜻한 날에는 항구의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헤럴드 튜리뷴]을 읽는다. 이 섬에서는 제대로 된 영자 잡지라고는

[헤럴드 트리뷴] 정도밖에 팔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정세에 뒤지지 않기 위해서 라도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일본에 있는 때보다는 외국에 나와 있는 경우에 더욱 민감하게 세계정세가 파급된다.)

달러와 엔의 환율을 파악해 두기 위해서라도, 이 신문은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

 

집으로 돌아가 점심을 만들어 먹는다. 마이나노라고 하는 그리스에서 밖에 나지 않는 향초를 사용하여,

'스파게티 마이다노 그리스 풍'이란 것을 만든다. 점심 식사가 끝나면 대개는 일을 한다. 낚시를 하러 가는 경우도 있다....

 

저녁 식사는 보통 여섯시쯤 한다.

그리고 저녁 식사만큼은 거의 아내가 만든다.비프 스테이크를 먹는 날도 있고, 튀긴 정어리인 날도 있고,

도미 밥인 날도 있고, 야채 스튜인 날도 있고, 아지 마리네인 날도 있고...아무튼 그때그때 집에 있는 재료를 사용하여 요리를 한다.

 

겨울, 그리스의 시골에서 입수할 수 있는 식료품의 종류는 매일매일 격변한다. 한편 거의 아무것도 구할 수 없는 날도 적지 않다.

 

..생략...

 

저녁 식사를 끝내면 밖은 새까만 어둠이다. 나는 거실에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아내는 일기를 쓰거나 친구에게 편지를 쓰거나,

가계부 정리를 하거나, "아-아, 나이 먹고 싶지 않아." 라는 둥 영문을 알 수 없는 불평을 내뱉기도 한다.

추운 밤에는 난로에 불을 지핀다. 난로의 불을 바라보며 멍하고 있으면,

시간은 조용히 그리고 기분 좋게 지나간다. 전화도 걸려 오지 않고, 마감날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눈앞에서 타닥타닥하고 불꽃이 튈 뿐이다.

기분 좋은 침묵이 사방에 가득하다. 포도주를 한 병 비우고, 위스키를 한 잔 스트레이트로 마시면, 슬슬 잠이 온다. 시계를 보니 열시다.

 

그러고는 그대로 푸근하게 잠으로 미끄러진다. 뭔가를 열심히 한 듯한 하루 같기도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듯한 하루 같기도 하다. "

 

 

pp 159 (팔레르모에서)

 

 

"...그 거리에서 한 달을 살았다. 그리고 그 동안 줄곧 [노르웨이의 숲]을 썼다. 그 소설의 대략 60 퍼센트

선까지를 거기서 썼다. 미코노스와는 달리, 해가 기울어도 잠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답답했다.

그렇다고 기분전환을 할 뾰족한 방법도 없다.

그래서 두 번 정도 팔레르모를 떠나 간단한 여행을 하였다.

한 번은 타오르미나로, 또 한 번은 마르타 섬으로 갔다.

그리고 팔레르모로 돌아오면, 다시 방에 처박혀 일을 하였다.

 

매일 소설을 쓴다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때로는 자신의 뼈를 깍고, 근육을 짓씹고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럴 만큼 대단한 소설이냐, 라고 반문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쓰는 사람으로서는 그렇게 실감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쓰지 않으면 더욱 괴로웠다.

글을 쓰기는 간단하지 않다. 하지만, 문장도 쓰이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런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집중력이다. 그 세계로 자신을 내던지기 위한 집중력이다.

그리고 그 집중력을 가능한 한 오래 지속시키는 힘이다.

그런 조건이 갖추어져 있으면, 어느 순간 그 괴로움이 돌연 극복된다.

그리고 자신을 믿는 일, 자신에게는 이 작품을 어김없이 완성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는 일.

 

..."